스웨덴이라고 하면, 우리는 보통 따뜻한 그림을 떠올립니다.
눈 내리는 거리, 튼튼한 복지, 아이를 낳아도 노후를 맞아도 나라가 든든히 받쳐주는 곳. “요람에서 무덤까지”라는 말이 가장 잘 어울리는 나라죠.
그런데 며칠 전, 한 영상을 보다가 손이 멈췄습니다. 그 복지천국 스웨덴이 정작 ‘집’ 문제 앞에서는 세계에서 손꼽히는 지옥이라는 겁니다. 처음엔 좀 의아했어요. 그렇게 잘 짜인 복지 국가가 왜? 그런데 내용을 따라가다 보니, 이건 단순히 먼 나라 이야기가 아니더군요. 우리에게도 익숙한 단어들이 자꾸 겹쳐 보였습니다.
조선일보 손진석 기자의 ‘머니워치’ 분석을 바탕으로, 제가 정리하면서 들었던 생각까지 함께 풀어보려 합니다.
스포티파이 CEO가 정부에 편지를 쓴 날
이야기는 2016년으로 거슬러 갑니다.
우리가 매일 음악 들을 때 쓰는 그 스포티파이, 스웨덴이 자랑하는 세계적인 기업이죠. 그 창업자이자 CEO인 다니엘 에크가 어느 날 정부에 공개서한을 보냅니다. 보통 기업가가 정부에 편지를 쓴다고 하면 세금이나 규제 이야기를 떠올리잖아요. 그런데 그가 꺼낸 건 뜻밖에도 ‘집’ 문제였습니다.
“제발 이 주거 문제 좀 해결해 주세요.”
이유는 이랬습니다. 수도 스톡홀름의 월세가 너무 비싸고, 그나마도 집을 구하기가 하늘의 별 따기라서, 해외에서 우수한 개발자를 데려오고 싶어도 데려올 수가 없다는 거였어요. 외국에서 막 온 사람이 당장 집을 살 수는 없으니 월세부터 살아야 하는데, 그 월세가 살인적인 데다 매물조차 없으니 인재가 발을 못 붙이는 겁니다.
한 나라를 대표하는 기업의 수장이 공개적으로 편지까지 써야 했다는 건, 그 문제가 얼마나 곪았는지를 보여주는 장면이었습니다.
세입자는 29%, 집주인은 7% — 같은 나라, 다른 세상
숫자를 하나 보겠습니다.
스웨덴 세입자가 버는 돈에서 월세로 나가는 비중이 평균 29%라고 합니다. 100만 원을 벌면 30만 원 가까이가 매달 월세로 사라지는 셈이죠. OECD 국가 중에서도 굉장히 높은 수준입니다.
그런데 집을 이미 가진 사람은 어떨까요. 주택담보대출을 갚는 데 쓰는 돈이 소득의 7%밖에 안 됩니다. 같은 하늘 아래 같은 도시에 사는데, 집이 있느냐 없느냐로 주거 부담이 약 네 배까지 벌어지는 거예요. OECD 회원국 중 이 격차가 가장 큰 편이라고 합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좀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더 들어가 보면, 소득 하위 20% 세입자 중 무려 44%가 버는 돈의 40% 이상을 월세로 낸다고 해요. 형편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더 가혹한 월세에 짓눌리는 구조인 거죠. 반면 같은 저소득층이라도 집을 가진 사람은 부담이 8% 수준에 그쳤습니다.
결국 ‘이미 가진 사람’과 ‘못 가진 사람’ 사이의 선이, 복지국가라는 울타리 안에서 오히려 더 또렷하게 그어지고 있었습니다. 집값도 2000년부터 2024년까지 3.3배가 올랐다고 하니, 그 선은 해가 갈수록 굵어졌겠죠.
“어느 동네든 월세는 비슷합니다” — 좋은 뜻에서 시작된 통제
여기서부터가 흥미롭습니다. 대체 왜 이렇게 됐을까요.
스웨덴은 공공이든 민간이든, 정부가 월세를 아주 강력하게 통제합니다. OECD 회원국 중에서 통제 강도가 가장 센 나라예요. 방식도 독특합니다. 매년 전국 단위로 임대인 단체와 세입자 협회가 마주 앉아, 마치 노사 협상을 하듯 “올해 월세는 얼마까지 올릴 수 있다”를 함께 정합니다.
그런데 여기에 결정적인 맹점이 하나 숨어 있어요. 바로 ‘위치’를 거의 따지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집이 어느 동네에 있든, 방 개수와 넓이만 비슷하면 월세도 비슷하게 매깁니다.
서울로 옮겨와 상상해 볼까요. 압구정동 한복판 집이든, 강북 끝자락 집이든, 방이 똑같이 세 개면 월세가 거의 같다는 겁니다. “차별 없이 평등하게”라는 좋은 뜻에서 출발한 제도죠.
그런데 현실은 어땠을까요. 좋은 동네 임대주택을 차지한 사람은 운 좋게 큰 이득을 보고, 그렇지 못한 사람은 계속 밀려나는 ‘복불복’ 게임이 되어버렸습니다. 평등하게 만들겠다는 의도가, 오히려 운에 모든 걸 맡기는 결과를 낳은 거예요.
8.8년, 17.8년, 20.6년 — 그리고 대기자 90만 명
스웨덴은 2차 대전 이후 ‘국민의 집’이라는 구호를 내걸고, 임대주택을 대기 명단 순서대로 차근차근 나눠줬습니다. 취지는 참 따뜻하죠. 문제는, 그 줄이 상상 이상으로 길다는 겁니다.
월세를 마음대로 못 올리게 막아두니 건설사 입장에선 집을 지어도 돈이 안 됩니다. 그러니 집을 안 짓죠. 공급은 쪼그라드는데 싼 임대주택을 원하는 사람은 넘쳐납니다. 줄이 길어질 수밖에요.
얼마나 기다려야 할까요. 2024년 기준 스톡홀름 평균 대기 시간이 근교 포함 8.8년입니다. 시내 신축은 17.8년, 임대료 싼 구축은 무려 20.6년. 그래서 현지에서는 이런 말이 농담처럼 돈답니다. “30대에 신청해서 예순에 받아도 남는 장사야.”
웃프죠. 한번 받으면 죽을 때까지 헐값에 살 수 있으니, 인생의 절반을 줄 서서 기다려도 손해가 아니라는 계산입니다. 그렇게 스톡홀름에서만 대기자가 약 90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위장결혼까지 등장한 임대주택 암시장
줄이 이렇게 길고, 한번 들어가면 평생 싸게 살 수 있으니, 사람들은 결국 길을 찾아냅니다. 그것도 어두운 길을요.
임대주택에 들어갈 ‘권리’ 자체가 거래되기 시작합니다. 큰돈을 받고 그 권리를 파는데, 적발을 피하려고 서류상으로 위장결혼이나 위장동거 상태를 꾸며둡니다. 이렇게 수억 원이 오간다고 해요. 또 어떤 사람은 임대주택을 받아놓고 정작 자기는 교외 부모님 댁에 살면서, 그 집을 몰래 재임대해 월세를 챙깁니다.
스웨덴 정부 보고서조차 임대주택의 4분의 1이 재임대 상태라고 인정했고, 이런 불법 거래 규모가 우리 돈으로 연간 약 1,500억 원에 달한다고 합니다. 정작 정직하게 집을 구하려는 진짜 세입자는, 정부가 정한 월세의 두세 배를 내고 남의 집에 더부살이로 들어가는 거예요.
게다가 이런 재임대는 보통 1년 단기계약입니다. 2년 넘게 살면 법적 거주권이 생겨 집주인이 함부로 못 내보내거든요. 그래서 세입자는 메뚜기처럼 1년마다 짐을 싸 들고 옮겨 다녀야 합니다. 안정된 보금자리를 위해 만든 제도 안에서, 가장 불안정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 생겨난 거죠.
부자도 줄 서서 받는 임대주택
이쯤에서 더 아이러니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임대주택 신청에 소득 제한이 없습니다. “부자라고 차별하면 안 된다”는 평등 논리 때문이에요. 그래서 돈 많은 사람도 똑같이 줄을 서서 임대주택을 받습니다. 본인은 비싼 자가에 살면서, 받아둔 임대주택에서 또 월세를 챙기고요.
평등을 지키려던 원칙이, 오히려 가진 사람의 자산을 더 불려주는 통로가 되어버린 셈입니다. 여기에 저소득층을 위한 별도 지원 제도마저 거의 없다 보니, 복지천국이라는 스웨덴에 홈리스가 약 3만 명, 그것도 대부분 스톡홀름에 몰려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살인적인 월세를 끝내 감당하지 못한 사람들이 결국 거리로 밀려난 겁니다.
“그럼 그냥 집을 사면 되잖아요?” — 그 길도 막혀 있습니다
여기서 누구나 한 번쯤 이런 생각을 합니다. 월세가 그렇게 힘들면, 차라리 집을 사면 되지 않나?
그런데 그 문도 굳게 닫혀 있습니다.
월세를 강하게 통제하니 건설사가 집을 지을 이유 자체가 없고, 공급이 적으니 민간 주택 가격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치솟습니다. 스톡홀름 인기 지역의 방 두 칸짜리 작은 아파트가 우리 돈으로 13억~15억 원이라고 해요.
2024년 기준 스웨덴 전역에 주택 15만 채가 부족하고, 국민의 93%가 주택 부족 지역에 산다는 연구도 있습니다. 인구당 주택 수는 거의 그대로인데 집값만 빠르게 올랐다는 거죠.
설상가상으로 1990년대 금융위기를 겪은 뒤 대출 심사가 무척 깐깐해졌습니다. 물려받은 돈이나 모아둔 자본이 두둑하지 않은 청년은 대출조차 받기 어렵습니다. 환경 규제가 까다로워 개발은 더디고, 땅의 상당 부분을 정부와 지자체가 쥔 채 적극적으로 풀지 않으니 민간 토지값은 또 가파르게 오르고요. 결국 월세도 지옥, 매매도 지옥인 이중고가 만들어진 겁니다.
개혁을 외친 총리는, 결국 자리에서 쫓겨났습니다
문제가 심각하다는 걸 스웨덴 사람들도 모르지 않습니다. 다 압니다.
2021년, 스테판 뢰벤 당시 총리가 용기를 냈습니다. “신축 주택만이라도 임대료를 시장 자율에 맡겨보자”고요. 새로 짓는 집이라도 숨통을 틔워주면 건설사들이 집을 더 짓지 않겠느냐는 취지였습니다.
그런데 “서민의 주거권을 빼앗는다”는 반발이 어마어마했습니다. 결국 의회에서 불신임안이 통과돼 뢰벤 총리는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습니다.
제가 가장 인상 깊었던 대목이 여기예요. 뢰벤 총리는 시장만능주의자가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용접공 출신의 중도좌파 인사였어요. 노동자의 삶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었죠. 그런 그조차 “이 제도를 손보지 않으면 스웨덴의 미래는 없다”고 봤다는 겁니다. 그런데도 거센 반발 앞에 결국 손을 들고 말았어요.
모두가 늪에 빠진 걸 압니다. 그런데 제도를 바꾸면 누군가는 늪에서 빠져나오고 누군가는 그대로 남겨질 테니, 아무도 선뜻 첫발을 떼지 못하는 겁니다.
먼 나라 이야기일까요?
손진석 기자가 짚은 결론은 의외로 단순합니다. 시장을 강하게 누르는 것이 늘 답은 아니라는 것.
세입자에게 천국을 주겠다던 월세 통제는, 현실에서는 운 좋은 소수만 웃고 다수는 더 긴 줄과 더 비싼 암시장으로 떠밀리는 결과를 낳았습니다. 어느 정도는 시장에 맡기고, 시장이 끝내 풀지 못하는 약자의 문제만 정부가 정교하게 보듬는 편이 차라리 낫지 않았을까. 그런 묵직한 질문을 남기는 사례죠.
그런데 저는 글을 정리하면서, 조금 다른 지점에 자꾸 눈이 갔습니다.
이 모든 혼란 속에서도 끝까지 부담이 7%에 머물렀던 사람들. 그들은 다름 아닌 ‘이미 집을 가진 사람들’이었다는 사실입니다. 정책이 어느 쪽으로 출렁이든, 제도가 누구를 살리고 누구를 버리든, 자산을 쥔 쪽은 좀처럼 흔들리지 않았어요.
저는 여기서 새삼 깨닫습니다. 결국 나를 끝까지 지켜주는 건 거창한 제도도, 누군가의 약속도 아니라, 내 손에 쥔 자산이더라는 것을요. 화려한 정책의 파도 속에서도 가라앉지 않으려면, 무엇보다 내 발밑부터 단단해야 한다는 것을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런 생각이 듭니다. 이게 정말 먼 북유럽만의 이야기일까요. 임대료 통제, 분양가 상한제, 공급 규제. 어딘가 익숙한 단어들 앞에서, 우리는 혹시 같은 길을 한 걸음씩 따라 걷고 있는 건 아닐까요.
오늘 밤, 한 번쯤 차분히 생각해 볼 만한 질문이 아닐까 합니다.
※ 이 글은 조선일보 손진석 기자의 ‘머니워치’ 분석과 OECD·BBC 등 공개 자료를 토대로 정리하고, 개인적인 생각을 더해 재구성한 것입니다. 특정 투자 권유나 정치적 주장을 담고 있지 않으며, 모든 판단과 선택은 읽는 분의 몫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