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상을 한번 해볼게요. 어느 날 아침, 우리나라 사람 거의 모두가 자기 집 한 채씩을 갖게 됐다고요. 전세 걱정도, 월세 걱정도 없는 나라. 생각만 해도 마음이 좀 편안해지지 않나요?
그런데 이 꿈같은 이야기를 거의 그대로 이뤄낸 나라가 실제로 있습니다. 동유럽의 루마니아입니다. 그리고 그 결말은… 우리가 상상한 것과 조금 달랐습니다.
유로스타트(EU 통계청) 자료를 찾아보면, 루마니아의 자가 보유율은 약 94~96%. 유럽에서 압도적인 1위입니다. 인구의 4% 정도만 남의 집을 빌려 살아요. 우리나라가 주거실태조사 기준 60% 안팎, 미국·일본도 60%대인 걸 떠올리면, 루마니아는 거의 ‘전 국민 1가구 1주택’에 가까운 셈이죠.
그러니 다들 행복할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정작 그 안에 사는 사람들은 ‘집’ 때문에 한숨을 쉽니다. 대체 왜 그럴까요?
가끔 “싱가포르도 비슷하지 않냐”고 하시는 분들이 있는데, 거긴 결이 좀 달라요. 싱가포르는 나라가 직접 집을 지어 장기 임대(리스) 형태로 나눠준 ‘설계된’ 모델이고, 루마니아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민영화’의 결과거든요. 출발점부터 다른 이야기라, 같은 선에 놓고 보긴 어렵습니다.
어떻게 온 국민이 집주인이 됐을까
시작은 1989년이었습니다. 악명 높던 차우셰스쿠 독재 정권이 무너지고 새 정부가 들어섰죠. 새 정부 입장에선 흩어진 민심을 빨리 끌어안아야 했습니다. 그때 꺼내든 카드가 바로 ‘집’이었어요.
과거 국가가 갖고 있던 아파트를, 거기 살던 사람들에게 거의 헐값으로 넘겨버린 겁니다. 1990년 정부령 61호, 1995년 법률 112호 같은 법이 그 근거가 됐고요. 여러 연구를 보면 이렇게 개인 손에 넘어간 집이 약 220만 채. 국가가 가진 집의 비중은 1990년 30%대에서 2020년대 들어 1~2%까지 뚝 떨어졌습니다.
여기에 ‘집은 빌리는 게 아니라 갖는 것’이라는 정서, 농촌에서 직접 집을 짓고 사는 문화까지 더해지니, 루마니아는 불과 몇 년 만에 거의 온 국민이 집주인인 나라가 됐습니다.
흔히 “그때 컬러 TV 한 대 값에 아파트를 샀다”는 이야기가 회자되곤 합니다. 솔직히 저도 처음엔 ‘에이, 설마’ 했는데, 막상 정확한 금액은 자료마다 달라서 딱 잘라 말하긴 어렵더라고요. 다만 ‘그 시절 물가로 보면 믿기 힘들 만큼 쌌다’는 건 여러 자료가 입을 모읍니다.
모두가 집을 가졌는데, 왜 더 힘들어졌을까
여기서부터가 진짜입니다. 모두가 집을 가지면 모든 게 풀릴 것 같죠? 그런데 현실은 예상 못 한 곳에서 하나둘 삐걱대기 시작했습니다.
첫째, 이사를 가고 싶어도 갈 수가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단순해요. 내가 다른 도시로 옮기려면, 지금 집을 누군가한테 팔거나 그곳에서 새 거처를 구해야 하잖아요. 그런데 주변 사람들이 죄다 이미 자기 집이 있고, 빌릴 셋집마저 귀하다면? 내 집을 사 줄 사람이 없는 겁니다.
실제로 해비타트 같은 주거 기관 자료는, 루마니아의 집 거래가 대부분 현금으로 이뤄지다 보니 사람들의 ‘주거 이동성’이 떨어진다고 짚습니다. 옆 도시에 좋은 일자리가 나도, 집 때문에 발이 묶이는 거죠. 가진 집이 오히려 발목을 잡는 족쇄가 되는 셈입니다.
둘째, 청년들이 독립할 집이 없습니다
민간에 다주택자가 사라지면, 시장에 나오는 셋집도 같이 말라버립니다. 루마니아는 임차 가구가 4% 남짓인데, 그마저 상당수가 계약서도 없는 비공식 거래라는 분석이 있어요. 나라가 운영하는 공공 임대는 1~2%로 거의 없다시피 하고요.
그럼 가장 힘든 건 누굴까요. 이제 막 사회에 나온 청년들입니다. 들어갈 셋집 자체가 없으니, 독립이 하늘의 별 따기예요. 통계를 보면 34세 이하 청년 상당수가 부모와 함께 사는데, 유럽에서도 높은 편이라고 합니다. (물론 이건 이탈리아·스페인도 마찬가지라, 원인이 임대 시장 하나만은 아니에요. 이 점은 짚고 가는 게 맞겠죠.)
만약 내 자녀가 다 컸는데도 들어갈 셋집이 없어서 계속 한집에 부대껴 살아야 한다면… 생각보다 꽤 답답한 그림입니다.
셋째, 새 집은 안 지어지고, 있는 집은 낡아갑니다
새로 집을 지어도 살 사람이 마땅치 않으면, 건설사는 집을 안 짓습니다. 그러면 건설업과 엮인 일자리도 같이 줄어들죠.
게다가 사회주의 시절 찍어내듯 지은 낡은 아파트가 많은데, 이걸 물려받은 사람들 형편이 넉넉지 않으면 고치고 관리할 여력도 부족합니다. 예전엔 나라가 해주던 보수·관리가, 이제 온전히 개인 몫이 된 거예요. 집값이 오를 기대도 크지 않으니 굳이 돈 들여 고칠 마음도 잘 안 생기고요. 그래서 일부 동네는 빠르게 낡아간다는 우려가 나옵니다.
넷째, 정작 살고 싶은 곳은 무섭게 오릅니다
그렇다고 집값이 다 잠잠하냐, 그것도 아닙니다. 일자리가 몰리는 수도 부쿠레슈티나 클루지 같은 도시는 집값이 임금보다 빠르게 뛴다는 분석이 꾸준해요. 지방 집은 내놔도 안 팔리는데, 정작 살고 싶은 곳은 부족하고 비싸지는 거죠. ‘다 같이 집주인’이라는 평등한 겉모습 속에서, 안으로는 격차가 벌어지는 묘한 풍경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무엇을 봐야 할까
루마니아 이야기를 여기까지 따라오다 보면, 질문 하나가 남습니다. “집 가진 사람 숫자만 많으면, 정말 모두의 주거가 안정될까?”
여러 자료가 비슷하게 말하는 건, 자가 보유율이라는 숫자 하나만으로는 주거의 질을 가늠하기 어렵다는 겁니다. 오히려 집이 자유롭게 사고팔리고(매매), 빌려줄 수도 있는(임대) ‘유동성’이 살아 있어야 시장도 사람도 함께 움직인다는 거죠. 다주택을 인위적으로 싹 없애버리면, 정작 집 없는 사람들이 들어갈 임대라는 통로부터 막혀버릴 수 있다 — 루마니아가 멀리서 보내는 신호는 그런 겁니다. 흔히 말하는 ‘규제의 역설’이고요.
제가 늘 강조하는 ‘지키는 투자’도 사실 여기서 출발합니다. 돈 버는 기술 이전에, 시장이 어떤 규칙으로 돌아가는지를 먼저 이해하는 것. 그래야 내 자산을 지킬 수 있으니까요. 내 집 한 채의 가격표만 들여다볼 게 아니라, 이 자산이 ‘얼마나 자유롭게 사고팔 수 있는가’까지 함께 보는 눈 — 루마니아가 우리에게 건네는 진짜 교훈은 그게 아닐까 싶습니다.
이런 ‘시장의 판을 읽는’ 이야기를 더 깊이 나누고 싶으시다면, 부의 요새 카페와 영상에서 이어서 풀어드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글이 내 자산을 한 번 더 다른 각도에서 바라보는 작은 계기가 됐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지금까지, 부의 요새였습니다.
※ 본 글은 해외 사례를 정리한 정보·교양 콘텐츠로, 특정 투자나 정책에 대한 권유 또는 단정적 예측이 아닙니다. 인용된 통계와 사실관계는 유로스타트, 해비타트 등 공개 자료와 루마니아 관련 법령(1990년 정부령 61호, 1995년 법률 112호 등)을 바탕으로 정리했으며, 해석에는 다른 견해가 있을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