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도 토큰, 저것도 토큰인데 왜 하나는 거래소에서 24시간 자유롭게 사고팔고, 하나는 증권사 계좌를 거쳐야 하는 거예요?”
지난 RWA 편을 올린 뒤 실제로 받은 질문입니다. 저도 처음엔 “그냥 다 코인 아니야?”라고 생각했던 사람이라 이 질문이 낯설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파고들어 보니, 이 둘은 겉모습(디지털 토큰이라는 형태)만 닮았을 뿐, 법적으로는 전혀 다른 세계에 속해 있었습니다. 오늘은 이 구분을 실제 사례와 함께 명확히 정리해보려고 합니다.
왜 이렇게 헷갈릴까?
비트코인도 토큰이고, 지난번에 다룬 RWA·STO도 결국 토큰입니다. 둘 다 블록체인 위에서 디지털 형태로 존재하고, 둘 다 ‘토큰화’라는 같은 단어로 불립니다. 그러니 헷갈리는 게 당연합니다.
하지만 법이 바라보는 기준은 형태가 아니라 “이 토큰이 무엇을 약속하고 있는가”입니다. 비유하자면 이렇습니다. 종이 한 장이라는 형태는 지폐도 될 수 있고, 주식 증서도 될 수 있고, 그냥 낙서장도 될 수 있습니다. 종이라는 재질이 아니라 그 위에 적힌 내용과 법적 약속이 그것의 정체를 결정하는 것이죠. 토큰도 마찬가지입니다.
핵심 차이는 여기서 갈린다
첫째, 법적 성격입니다. 토큰증권(STO)은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 또는 ‘수익증권’ 등 증권으로 분류됩니다. 발행하려면 증권신고서 제출, 투자자 보호 장치 마련 같은 절차를 거쳐야 합니다. 반면 비트코인 같은 가상자산은 대부분 국가에서 증권으로 분류되지 않습니다. 특정 발행 주체가 없고, 네트워크 참여자들이 탈중앙적으로 운영한다는 점이 이유로 꼽힙니다.
둘째, 발행 주체입니다. 토큰증권은 부동산 회사, 저작권 보유자, 금융기관처럼 명확한 발행 주체와 책임자가 있습니다. 반면 비트코인은 애초에 “발행사”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만든 사람(사토시 나카모토)조차 지금은 아무 권한이 없는, 순수하게 네트워크 참여자들의 합의로 돌아가는 구조입니다.
셋째, 규제 기관과 투자자 보호입니다. 토큰증권은 증권사를 통해 유통되고, 증권신고서 공시 의무, 불공정거래 규제, 투자자 예치금 별도 보관 같은 보호 장치가 법적으로 강제됩니다. 반면 가상자산은 국내에서 특정금융정보법(특금법) 등을 통해 거래소 규제는 받지만, 증권 수준의 투자자 보호 장치까지는 아직 미비하다는 지적이 꾸준히 나오는 상황입니다.
실제 사례로 구분해보기
이론만으로는 여전히 아리송할 수 있으니, 실제로 국내외에서 있었던 판단 사례 두 가지를 보겠습니다.
국내 사례 — 뮤직카우 ‘저작권료 참여청구권’
음악 저작권 수익을 조각내 판매하는 플랫폼 뮤직카우는, 처음엔 이 상품을 증권이 아닌 일반 소비자 서비스처럼 운영했습니다. 그런데 2022년 4월, 금융위원회 증권선물위원회는 이 청구권이 자본시장법상 ‘투자계약증권’에 해당한다고 판단했습니다. 여러 투자자가 공동으로 자금을 투입하고, 그 손익이 사업 결과에 따라 귀속되는 구조라는 게 이유였습니다.
이후 뮤직카우는 투자자 보호 장치(예치금 분리 보관, 설명자료 정비 등)를 갖추라는 조건을 부여받았고, 같은 해 11월 이 조건을 모두 이행한 것이 확인되면서 제재 면제를 받았습니다. 지금 뮤직카우가 ‘음악증권’이라는 이름으로 증권사를 거쳐 상품을 유통하는 것도 이 판단의 결과입니다. 이 사례는 국내에서 “토큰처럼 생긴 것도 내용에 따라 증권으로 판단될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첫 사례로 꼽힙니다.
해외 사례 — 리플(XRP)과 미국 SEC의 소송
가상자산 쪽에서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와 리플 간의 소송이 대표적인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SEC는 리플이 발행한 XRP를 증권으로 보고 2020년 말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2023년 나온 1심 판결은 흥미로운 결론을 냈는데, 리플이 기관투자자에게 직접 판매한 XRP는 증권에 해당하지만, 일반 투자자가 거래소에서 사고파는 방식의 판매는 증권으로 보기 어렵다는, 판매 방식에 따라 판단이 갈리는 절충적 결론이었습니다.
이후 양측이 항소를 이어가다가, 2025년 하반기 SEC와 리플 모두 항소를 철회하면서 이 판결이 그대로 확정됐습니다. 같은 토큰이라도 ‘누구에게 어떤 방식으로 판매했는지’에 따라 법적 성격이 달라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 상징적인 사례라 할 수 있습니다.
두 사례를 나란히 놓고 보면, 결국 판단 기준은 토큰의 겉모습이 아니라 “이 거래에 공동사업성이 있는가, 투자자가 타인의 노력에 손익을 의존하는가”라는 실질적인 내용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한눈에 비교해보기

Q&A로 정리해보기
Q1. 국내 조각투자 플랫폼은 다 STO인가요?
전부 그런 건 아닙니다. 금융위는 조각투자 상품을 개별적으로 심사해서 증권성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집니다. 뮤직카우처럼 증권으로 판단된 사례가 있는가 하면, 구조에 따라 증권으로 분류되지 않는 조각투자 상품도 있을 수 있습니다. 특정 플랫폼이 STO인지 여부는 해당 업체가 금융위 혁신금융서비스 지정을 받았는지, 증권사를 통해 유통되는지를 확인하는 게 가장 정확합니다.
Q2. 토큰증권(STO)이면 무조건 안전한 투자인가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증권으로 분류된다는 건 ‘투자자 보호 절차를 거친다’는 뜻이지 ‘원금이 보장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실제로 조각투자 상품 약관에도 “예금자보호법 적용 대상이 아니며, 투자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는 문구가 명시되는 것이 일반적입니다. 증권이라는 지위는 절차적 안전판이지, 수익을 보장하는 장치는 아니라는 점을 구분해서 이해하시는 게 좋습니다.
Q3. 가상자산은 규제가 아예 없다는 뜻인가요?
아닙니다. 증권법 수준은 아니지만, 국내에서는 특정금융정보법에 따라 거래소의 자금세탁방지 의무, 실명계좌 확인 등의 규제가 적용되고 있습니다. 다만 증권처럼 발행 단계부터 공시·심사를 받는 구조는 아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투자자가 스스로 더 꼼꼼히 따져봐야 하는 영역으로 평가되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 줄로 정리하면
가상자산과 토큰증권은 둘 다 ‘토큰’이라는 옷을 입고 있지만, 그 안에 어떤 법적 약속이 담겨 있느냐에 따라 완전히 다른 규칙을 적용받는 별개의 존재입니다.
안내 사항
본 게시글은 가상자산과 토큰증권(STO)의 법적 개념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정보 제공 목적으로 작성되었으며, 특정 자산이나 플랫폼에 대한 투자 권유가 아닙니다. 언급된 제도, 판단 사례, 소송 결과 등은 각 발표·확정 시점 기준이며 이후 관련 법규나 판례가 변경될 수 있습니다. 투자 판단은 반드시 최신 공시자료와 관련 법규를 직접 확인하신 후, 본인의 책임 아래 신중하게 내려주시기 바랍니다.
출처
-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저작권료 참여청구권의 증권성 여부 판단 및 ㈜뮤직카우에 대한 조치」(2022. 4.)
- 금융위원회 보도자료, 「조각투자 시장의 규율을 지속적으로 확립해 나가겠습니다」(2022. 11.)
- 미국 뉴욕남부지방법원, SEC v. Ripple Labs 판결(2023) 및 항소 철회 관련 보도(2025)
- 자본시장법 제4조(증권의 종류) 및 관련 조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