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핏이 손을 놓았다는 기사를 보고
버핏이 CEO 자리에서 물러난다는 기사를 봤을 때, 저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습니다. 95세, 60년. 숫자만 봐도 까마득한데, 이상하게 좀 서운하더군요. 오래 다니던 단골 가게가 어느 날 조용히 문을 닫은 기분이랄까요.
그런데 며칠 지나니 다른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가 매일 운전대를 잡던 시대가 끝나고 나서야, 그가 평생 입에 달고 살던 말들이 오히려 더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한 겁니다. 화려한 종목 이름이 아니라, ‘잃지 않는 법’ 말입니다. 어제 급등한 게 오늘 반토막 나는 요즘 장에서는 더더욱요. 그래서 이 시리즈의 첫 글을, 저는 망설임 없이 버핏으로 골랐습니다.
“절대 돈을 잃지 마라”가 농담이 아니었다
“제1법칙, 절대 돈을 잃지 마라. 제2법칙, 제1법칙을 잊지 마라.” — 워렌 버핏
부끄러운 고백 하나 하겠습니다. 저도 한때는 “이 정도 가격이면 적당하지” 하며 가치에 딱 맞붙은 자리에서 덥석덥석 사들이곤 했습니다. 그러다 별것 아닌 악재 하나에 원금이 휘청이는 걸 몇 번 겪고 나서야, 저 첫 번째 법칙이 비로소 몸으로 와닿았습니다.
버핏은 이걸 다리에 빗댑니다. 30톤을 견디게 지은 다리에 10톤 트럭만 건너게 한다고요. 만약 그 다리가 딱 10톤까지만 버티게 만들어졌다면, 빗물이 조금만 불어도 무너집니다. 투자도 똑같더군요. 가격과 가치 사이에 여유가 없으면, 작은 충격에도 밤잠을 설칩니다. 그 여유 폭이 바로 안전마진이고, 제가 ‘수익보다 생존’을 입에 달고 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넘볼 수 없는 ‘해자’를 가진 회사
중세의 성은 깊은 해자로 둘러싸여 적이 함부로 다가오지 못했습니다. 버핏이 기업을 볼 때 제일 먼저 찾는 게 이 해자라고 합니다. 경쟁사가 돈을 아무리 부어도 쉽게 따라잡지 못하는 자리 말입니다.
코카콜라의 100년 묵은 브랜드, 한번 익숙해지면 좀처럼 갈아타기 싫어지는 애플 생태계의 그 끈끈함. 좋은 물건을 싸게 파는 회사는 널렸지만, 세월이 흘러도 자리를 안 빼앗기는 회사는 드뭅니다. 버핏은 늘 그 드문 회사를, 조급해하지 않고 기다렸다 샀습니다. 저는 이 ‘기다림’이 제일 어렵더군요.
10분도 들고 있기 싫은 걸, 10년이나
“우리가 가장 좋아하는 보유 기간은 ‘영원히’다.” — 워렌 버핏
버핏이 평생 부자가 된 비결은 신들린 매매 타이밍이 아니었습니다. 좋은 회사를 사서 지겨울 만큼 오래 들고 있었다는 것, 그게 전부였습니다. 단기 주가가 출렁일 때마다 가슴이 철렁하는 건 저도 똑같습니다. 그래도 시간은 결국 조급한 사람의 주머니에서 인내하는 사람의 주머니로 부를 옮긴다는 걸, 이 노인은 60년에 걸쳐 증명해 보였습니다.
사실, 가장 마음에 남은 건 이 대목이었습니다
이 글을 쓰며 제가 제일 오래 들여다본 부분은 따로 있습니다. 많은 분들이 버핏을 옛날 굴뚝 기업만 끌어안는 고집 센 노인으로 압니다. 그런데 실제 행보는 정반대였어요.
그는 은퇴 직전 2년 동안 애플 지분의 약 4분의 3을 덜어냈습니다. 세금 면에서 유리하다는 이유였죠. 그래도 애플은 2026년에도 여전히 버크셔의 최대 보유 종목입니다. 동시에 그는 구글의 모회사 알파벳 비중을 크게 늘렸고, 올해에는 구글에 100억 달러 규모를 추가로 넣기도 했습니다. 한때 기술주라면 손사래 치던 사람이, ‘진짜 좋은 기업’의 정의를 시대에 맞춰 조용히 갱신한 겁니다.
원칙은 그대로 두되, 그 원칙을 적용할 대상은 바꾼다. 저는 이 유연함이야말로 버핏의 진짜 무서운 점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지금 버크셔는 3,800억 달러가 넘는 현금을 쌓아둔 채, 무리해서 쫓아가지 않고 기회를 기다립니다. 이것 역시 결국 ‘수익보다 생존’이더군요.
비를 예측하지 말고, 방주를 지으세요
“비가 내릴 것을 예측하는 것은 중요하지 않다. 방주를 짓는 것이 중요하다.” — 워렌 버핏
버핏이 떠난 자리에 남은 건 몇 %의 수익률이 아니라, 결국 이 한 문장이었습니다. 우리는 다음 위기가 언제 올지 끝내 못 맞힙니다. 대신 어떤 비가 와도 가라앉지 않을 방주는, 지금부터 한 판자씩 댈 수 있습니다. 싸게 사고, 무너지지 않을 회사를 고르고, 오래 버티는 것. 버핏이 60년간 한 일은 사실 화려한 베팅이 아니라, 매일 그 방주의 못이 잘 박혀 있는지 살피는 일이었습니다.
제 자산에도, 우리 모두의 자산에도 방주가 필요합니다. 오늘 그 첫 판자 한 장을, 같이 대보면 어떨까요.
다음 편에서는 위기 속에서도 자산을 방어하는 ‘올웨더 포트폴리오’의 창시자, 레이 달리오 편으로 돌아오겠습니다.
※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투자 자문이 아니며, 모든 투자의 판단과 책임은 투자자 본인에게 있습니다.
핑백: 100년 전 원칙이 지금도 맞는 이유, 벤저민 그레이엄의 미스터 마켓 - mywealthfortres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