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회사에 투자할까 고민될 때, 당신은 무엇을 보십니까. 대부분 재무제표를 펼칩니다. 그런데 60여 년 전, 한 남자는 정반대로 움직였습니다. 그는 그 회사 제품을 쓰는 고객에게, 경쟁사 사장에게, 심지어 그만둔 직원에게까지 직접 찾아가 물었습니다. ‘그 회사, 진짜 어때요?’ 이 발로 뛰는 정보 수집법에 그는 뱃사람들의 수다에서 따온 이름을 붙였습니다. 스커틀벗. 그리고 이 방법은, 훗날 워런 버핏을 만든 결정적 15%가 됩니다.
“나는 85% 그레이엄, 그리고 15%는…”
버핏에게는 유명한 자기소개가 하나 있습니다. “나는 85% 벤저민 그레이엄, 15% 필립 피셔다.” 그레이엄은 이 시리즈에서 이미 다뤘죠. 미스터 마켓과 안전마진, 싸게 사서 잃지 않는 법을 가르친 스승입니다.
그런데 나머지 15%, 이 필립 피셔라는 이름은 대부분 처음 들어보실 겁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겨우 15%면 곁다리 아닌가 싶었죠. 그런데 파고들수록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입을 모아 말합니다. 담배꽁초나 줍던 버핏을 역사상 최고의 부자로 바꾼 게 바로 그 15%였다고.
담배꽁초라니, 무슨 말일까요. 여기서부터 이야기가 재밌어집니다.
담배꽁초 줍는 투자 vs 좋은 회사 사는 투자
젊은 시절 버핏은 스승 그레이엄에게 배운 대로 ‘담배꽁초 투자’를 했습니다. 길에 떨어진 꽁초는 더럽지만, 아직 한 모금은 남아 있죠. 공짜니까 주워서 그 한 모금을 피운다. 즉 볼품없어도 아주 싼 주식을 사서 반짝 오르면 파는 방식입니다. 싼 맛에 사는 거죠.
피셔는 정반대였습니다. “왜 꽁초를 줍나. 아예 좋은 담배 한 갑을 사서 오래 피우면 될 것을.” 조금 비싸더라도 앞으로 몇십 년간 쑥쑥 클 위대한 기업을 사서, 그냥 오래 들고 가라는 겁니다.
숫자로 보면 확 와닿습니다. 한 번 50% 올랐다가 다시 제자리로 돌아오는 싼 주식과, 매년 15%씩 20년을 꾸준히 크는 좋은 주식. 후자가 비교도 안 되게 앞섭니다. 피셔는 “싼가?”가 아니라 “위대한가?”를 먼저 물었습니다. 버핏이 코카콜라를, 나중엔 애플을 수십 년 들고 간 그 방식이 바로 여기서 왔습니다.
스커틀벗, 발로 뛰는 정보력
피셔가 남긴 것 중 제가 제일 무릎을 친 건 ‘스커틀벗(scuttlebutt)’이라는 기법입니다. 원래 뱃사람들이 물통(scuttlebutt) 앞에 모여 나누던 잡담을 뜻하는 말인데, 우리로 치면 ‘카더라’ ‘입소문’ 정도 되겠네요.
피셔의 방법은 이랬습니다. 어떤 회사가 궁금하면 재무제표만 들여다보지 말고, 그 회사 제품을 쓰는 고객, 경쟁사, 납품업체, 심지어 그만둔 직원한테까지 직접 물어보라는 겁니다. 재무제표는 회사가 보여주고 싶은 뒷모습이지만, 경쟁사와 고객의 입에서는 진짜 실력이 나오니까요.
이걸 우리 일상으로 옮기면 이렇습니다. 어떤 프랜차이즈에 투자할까 고민된다면, 사업보고서만 보지 말고 그 매장 알바생에게 “요즘 손님 많아요?” 물어보고, 옆 가게 사장님한테 “저 집 장사 잘돼요?” 슬쩍 떠보고, 단골들이 왜 계속 오는지 들어보는 겁니다. 린치가 “생활 속에서 발견하라”고 했다면, 피셔는 “발견했으면 발로 뛰어 캐물어라”고 한 셈이죠. 두 사람이 이렇게 연결됩니다.
그래서, 언제 파느냐
피셔에게 “그럼 이 좋은 주식을 언제 팔아야 합니까?”라고 물으면 답이 근사합니다. 매수할 때 조사를 제대로 했다면, 팔아야 할 때는 “거의 영원히 오지 않는다.”
회사가 여전히 훌륭하고 계속 성장하는 한, 주가가 좀 출렁인다고 팔 이유가 없다는 겁니다. 정말 팔아야 할 때는 딱 하나, 내가 그 회사를 잘못 봤거나 회사의 본질이 망가졌을 때뿐이라는 거죠. 이건 앞서 다룬 보글의 “사서 잊어버려라”, 버핏의 “10년 보유할 생각 없으면 10분도 갖지 마라”와 정확히 같은 곳을 가리킵니다. 거장들은 결국 한 산의 다른 등산로였던 셈입니다.
부끄러운 고백 하나
솔직히 저는 오랫동안 담배꽁초만 주웠습니다. “이거 지금 싸다” 싶으면 회사가 뭘 하는 곳인지도 잘 모르고 샀어요. 반짝 오르면 팔고, 또 다른 꽁초를 찾아 두리번거렸죠. 손은 바쁜데 자산은 안 늘더군요. 좋은 회사를 오래 안고 가는 지루함을 못 견뎠던 겁니다.
피셔를 읽고 나서야 알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한 건 투자가 아니라 꽁초 줍기였다는 걸. 정작 힘을 쏟아야 할 곳은 ‘지금 싼가’를 계산하는 데가 아니라, ‘이 회사가 10년 뒤에도 위대할까’를 파고드는 데였습니다. 그 질문 하나가 순서를 통째로 바꿔놨습니다.
버핏의 15%, 필립 피셔. 이제 저는 그 15%가 왜 나머지 85%를 완성했는지 알 것 같습니다. 싸게 사는 규율(그레이엄) 위에, 위대한 것을 알아보는 눈(피셔)이 얹혔을 때 비로소 진짜 투자가 시작되니까요.
오늘 내 계좌를 열어보세요. 나는 지금 꽁초를 줍고 있나요, 아니면 좋은 담배 한 갑을 오래 피우고 있나요.
함께 읽으면 좋은 글 — ‘투자거장들의 투자철학’ 시리즈
- 100년 전 원칙이 지금도 맞는 이유, 벤저민 그레이엄의 미스터 마켓 — 피셔의 스승 격인 그레이엄. 버핏의 나머지 85%가 궁금하다면.
- 95세에 은퇴한 워렌 버핏 투자 원칙, 변동성 장세에서 내 자산을 지키는 법 — 그레이엄과 피셔를 한 몸에 합친 사람. 85% + 15%의 결과물.
- 미래를 못 맞히는 사람이 살아남는 법, 레이 달리오의 올웨더 포트폴리오 — 좋은 기업을 고르는 대신, 아예 못 맞힌다고 인정한 정반대의 길.
※ 이 글은 특정 종목의 매수·매도를 권유하는 자문이 아니며, 소개한 투자 기법의 적용과 판단은 투자자 본인의 몫입니다. 좋은 기업을 고르는 일에도 언제나 위험은 따릅니다.
참고 자료
- Philip A. Fisher, 『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s』(1958)
- Quartr, 「The Timeless Investment Wisdom of Philip Fisher」, 2025.09.16
- arvy, 「Common Stocks and Uncommon Profits」, 2026.03.04
- Morningstar (피셔를 “역사상 위대한 투자자 중 한 명”으로 평가)